[아르코 미술관] 어긋난 파동, 흔들리는 시간 : 오민, 카민 노먼트 전시

윤대규 기자

등록 2026-06-09 15:23


김상규 교수님 소개로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어긋난 파동 흔들리는 시간을 보았다. 오랜만에 들른 대학로에는 대학 시절의 추억이 많다. 그린디자인 대학원이 제로원 센터에 있어 저녁마다 이곳을 찾았고 집도 낙산이라 수시로 오가던 동네였다. 오랜만에 찾은 이곳은 여전히 예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르코 미술관이 있는 광장도 그대로였다. 다만 공연장이 있던 자리에 멋진 카페가 하나 더해졌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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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면서 무심코 집어든 팜플렛을 전시장 앞에서 오랫동안 정독했다. 노이즈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나름 흥미로웠다. 내가 관심을 가져온 경계와 죽음의 문제와 밀접한 무언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디자인의 시작을 갈등으로 보는데 사실 갈등도 노이즈라고 볼 수 있다. 갈등이 시작되면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노이즈가 정보화되는 과정이다. 그러니 노이즈는 정보 이전의 어떤 상태이다. 물리학으로 치면 양자와 전자 사이에 질서가 잡히기 이전의 플라즈마 상태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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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적 노이즈는 일종의 경계가 생기는 것이다. 노이즈를 인식했다는 것은 나와 대상이 서로 맞지 않는 상태 즉 주체와 객체 혹은 주체와 주체 사이에 경계가 생겼다는 증거다. 이런 점에서 노이즈는 갈등임과 동시에 경계다. 우리는 이 갈등과 경계를 부정적인 프레임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경계가 있어야 주체성이 있고 경계가 사라지면 어느 한쪽 혹은 양쪽 모두가 사라진, 즉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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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이론의 창시자 클로드 섀넌은 혼돈 속에 더 많은 정보가 있다고 했다. 우리가 정보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정리되고 분류되어 예측 가능한 상태로 전환된 것이다. 예측 가능한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반복되는 지루함이다. 그래서 현대 예술과 디자인은 이런 정보성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우연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매력적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이 우연과 예측 불가능성이 노이즈라면 예술가와 디자이너는 노이즈를 통해 관람자나 사용자의 새로운 경험과 생각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이즈는 정보의 어머니이자 창의력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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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즈는 정보의 원초적 형태다. 아직 질서화되지 않은 세계 의미를 부여받기 직전의 상태. 노이즈가 등장한다는 것은 동시에 경계가 시작되었다는 신호다. 나와 너 사이, 안과 밖 사이, 현재와 과거 혹은 미래 사이 어딘가에 경계가 생겼다는 뜻이다. 클래식 음악은 질서를 추구한다. 노이즈를 최소화하는 것이 서양의 수학과 음악이 오랫동안 지향해온 이상이었다. 고전 미술도 그랬다. 그러나 현대 미술은 노이즈를 수용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록 음악의 전기기타는 거칠고 찢어지는 노이즈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 노이즈는 저항이라는 새로운 음악적 태도를 만들어냈다. 기존 질서에 대한 거부이자 경계의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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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 노이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생명성이다. 노이즈가 있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증거다. 하나는 전체다. 거기에 노이즈 즉 갈등이 생기면 하나가 둘로 쪼개진다. 반대로 둘이 하나가 되면 노이즈와 경계는 사라진다. 우리는 경계의 사라짐을 타협이라는 말로 아름답게 묘사하지만 사실 그것은 어느 한쪽의 소멸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어떤 죽음이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서로를 보존하려면 노이즈가 필요하다. 갈등이 필요하다. 경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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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의 작품은 동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작품 앞에 섰을 때 나는 여러 시점이 동시에 펼쳐지는 장면들을 마주했다. 촬영하는 자와 촬영되는 자,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여러 시점이 동시에 펼쳐지고 순환된다. 실제 촬영 현장도 그 자체가 순환하는 구조다. 어느 한 시점이 정답이 아니라 모든 시점이 동시에 유효하다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감각한다. 감각이 촬영이라면 우리는 서로를 끊임없이 촬영하며 살고 있다. 눈빛으로 기억으로. 서로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경계를 확인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아와 타자는 동시적 시점이 만들어낸 표현이다. 나는 네가 나를 보는 방식으로 나를 알게 되고 너는 내가 너를 보는 방식으로 너를 알게 된다. 감각은 결코 혼자 작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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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 노먼트의 작품은 나무로 만들어진 신경계 공간이다. 공간에 들어섰을 때 나무들이 얽힌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음악이 들렸다. 나무에 걸터앉으니 소리가 나무를 진동시킨다. 소리와 나무의 공명으로 둘이 따로 존재하는 감각이 아니라 공존을 넘어 공생하고 있음을 느꼈다. 노먼트의 작품은 신경망의 일부를 보여주려는 듯하다. 신경세포는 감각을 통합하기 위해 존재한다. 화학적 신호가 시냅스를 자극해 다른 신경세포의 전기 자극을 만들어낸다. 신경세포들이 연결되면 전혀 새로운 공감각 세계가 구성된다. 노먼트의 공간은 그 미세한 생물학적 진동을 큰 스케일로 번역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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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는 노이즈가 만들어내는 갈등과 경계를 주목하라고 말한다. 서로의 경계성이 바로 우리가 주체성을 갖고 있다는 증거이고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질서와 혼돈 계획과 즉흥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이 대칭들은 서로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준다. 양전자와 음전자가 충돌해 빛을 만들어내듯 그 충돌이 에너지를 생성한다. 우리가 서로의 노이즈를 회피하지 않을 때 비로소 함께 빛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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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를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면 먼저 입구에서 팜플렛을 충분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 노이즈와 경계 질서와 혼돈에 대한 전시의 메시지를 미리 머릿속에 펼쳐두면 작품이 다르게 보인다. 그냥 보는 것과 생각을 품고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실험적이고 추상적인 작품일수록 그렇다. 감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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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생각을 정리했다면 오민의 작품을 여러 각도에서 천천히 바라보길 권한다. 여러 시점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 화면 앞에서 감각의 동시성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리고 작품을 보고 있는 내가 지금 어느 시점에 서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보면 좋다. 나는 보는 자인가 보이는 자인가. 그 질문을 품고 화면을 바라보면 단순한 영상이 아니라 나의 감각 구조 자체를 들여다보는 경험이 된다. 2층으로 올라가면 카밀 노먼트의 작품이 있다. 오민의 작품에서 흩어져 있던 동시적 감각들이 이곳에서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음악이 나무를 울리고 그 울림이 공간을 타고 몸으로 들어오는 순간 감각은 더 이상 눈이나 귀에 머물지 않는다. 온몸이 하나의 신경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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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작품이 건네는 메시지는 크고 깊다. 생각의 여운을 오래 남길 전시다.
윤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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